2023.11.19
[돈의문박물관마을] 이별박물관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모습의 이별들
▲ 돈의문박물관마을, 이별박물관 현판. ⓒ 성낙선
이별은 아픔을 동반한다. 때로는 그 아픔이 지나쳐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피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 하지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절대 피할 수 없는 게 이별이다. 회자정리라고 했다. 누군가와 만남을 가진 뒤에는 반드시 이별이 따른다.
그 숱한 이별들 중에, 간혹 불에 덴 것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별이 있다. 그같은 이별이 우리에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을 안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별이 아픈 기억으로 굳어지기 전에 머릿속에서 지워내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그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국가 애도 기간 끝났지만, 추모 발걸음 이어지는 이태원역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조성된 이태원 압사 참사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 지난 2022년 11월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조성된 이태원 압사 참사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 유성호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이별의 고통. 그 고통이 우리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이별이 떨쳐내기 힘든 고통으로 남을 때, 우리가 그와 같은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오로지 하루빨리 잊고 사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까?
서울 종로구 돈의문박물관마을에 가면, '이별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박물관이 있다. 그곳에 오랜 시간 이별의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에서 진솔하고 참된 마음으로 이별을 대하는 사람들을 본다. 이별을 대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마주한다.
▲ 시민갤러리, 이별박물관 입구. ⓒ 성낙선
아픈 기억 대신, 세월을 잊은 그리움
아버지는 아들에게 30년 동안, 답장이 오지 않는 편지를 쓰고 있다. 매달 두 통씩 쓴 편지가 무려 1천여 통에 달한다. 아들은 군에 입대한 지 6개월여 되던 날, 사고로 순직했다. 그 후로 아버지는 아들이 살아 있을 때 하지 못했던 말들을 편지로 써서 전한다.
아들과 함께 한 시간은 22년. 아들에게 편지를 쓰며 보낸 시간이 아들과 함께 보낸 시간보다도 더 길다. 아버지는 어떻게 그 무거운 마음을 안고 사는 걸까? 일흔이 훌쩍 넘은 아버지는 이제 아들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인생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 군 복무 중에 순직한 아들에게 아버지가 쓴 편지. ⓒ 성낙선
남자는 여자를 만난 지 일 년 만에 헤어졌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여자를 잊지 못한다. 다른 일에 몰두하려고 하지만, 그게 잘되지 않는다. 눈만 감으면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남자는 회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사랑이 떠나간 자리에 향수, 초콜릿, 반지, 재킷 등이 남았다. 남자는 여자한테서 받은 그 선물들을 볼 때마다 자신이 잘못했던 일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미 사랑을 되찾을 방법은 없다. 그래도 남자는 마지막으로 여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긴다.
▲ 사랑의 정표였다가 이제는 이별의 증표로 남은 반지. ⓒ 성낙선
여자는 남자에게서 받은 커플 반지를 끝내 없애지 못한다. 남자가 여자와 만난 지 일 년을 기념해 선물한 반지다. 여자는 반지를 나눠 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와 헤어졌다. 여자는 그 후에 반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여자는 고민 끝에 반지를 버리거나 돌려주는 게 최선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다. 여자는 남자가 그 반지를 마련하기 위해 어떤 고생을 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반지를 예쁜 추억과 함께 오래 간직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 아내를 앞서 보내고 혼자 식사를 하는 남편. ⓒ 성낙선
남편은 앞서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면서 살고 있다. 아내와 함께 산 세월이 무려 72년.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든 긴 세월이다. 남편은 이제 혼자 밥을 먹는다. 그 시간이 얼마나 낯설지,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
남편은 여전히 아내와 함께 산다. 현관에는 아내의 신발이, 옷장에는 아내가 입던 옷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남편은 간밤에 아내가 순두부찌개를 끓여주는 꿈을 꾼다. 그런데 그 찌개를 한 술도 뜨지 못하고 꿈에서 깨어난 걸 못내 아쉬워한다.
▲ 이별박물관,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 동물들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 ⓒ 성낙선
우리 주변의 또 다른 이별박물관들
그들의 담담한 말투, 낮은 음성에 일종의 달관이 엿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면에 숨겨진 고통을 모두 다 감출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같은 말투와 음성에서 오랫동안 고통을 끌어안고 산 사람들이 갖게 되는 단단하게 응결된 감정이 느껴진다.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이별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큰 상처로 자란다. 그 고통을 혼자서 짊어지고 사는 건 정말 가혹한 일이다. 그 고통이 사회적인 사건에서 비롯됐을 때는 더욱 더 그렇다.
▲ 돈의문박물관마을, 이별박물관. 전시물 일부. ⓒ 성낙선
이별박물관을 이색적인 박물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이별박물관은 절대 이색적인 박물관이 아니다. 결코 평소 보기 드문 전시물로 가득한 곳이 아니다. 그에 반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평이한 물건들로 채워진 박물관 중에 하나다.
어떤 측면에서는 너무 흔해서 탈이다. 돈의문 같이 특정한 장소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별박물관은 '서울 이태원', '진도 팽목항'에도 있다. 그 이전에 생겨난 이별박물관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당신은 또 당신만의 특별한 이별박물관을 가지고 있다.
▲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월 28일, 참사 장소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골목을 찾은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를 읽거나 적고 있다. ⓒ 김성욱
누군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간이 망각에 의존해 살아왔다면, 인간은 그저 '동물'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망각이 아니라, 기억에 의존해 살아간다. 다만 아픈 기억을 간직하는 데는 지혜가 필요하다.
혼자가 감당하기 힘든 아픔은 여럿이 같이 나눠서 짊어져야 한다. 그게 '인간'이다. 이별박물관에서 접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누군가의 아픈 기억을 들여다보는 이런 행위들이 우리 모두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 이별박물관에서 아픔과 슬픔을 나누는 법을 배운다.
▲ 돈의문박물관마을, 학교앞분식.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곳. ⓒ 성낙선
돈의문박물관마을에는 오래전 서울의 좁은 골목길에서 볼 수 있었던 40여 채의 건물들이 남아 있다. 그 건물들이 모두 삼대가옥, 서대문여관, 새문안극장 등으로 불리며, 작은 박물관 구실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다.
이별박물관도 그런 박물관들 중에 하나다. 박물관 규모가 매우 작다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별박물관은 '시민갤러리' 건물 안에 있다. 월요일에는 문을 닫는다. 개관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고, 입장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
▲ 삼대가옥, 돈의문박물관마을 ⓒ 성낙선
오마이뉴스
성낙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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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9
[돈의문박물관마을] 이별박물관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모습의 이별들
▲ 돈의문박물관마을, 이별박물관 현판. ⓒ 성낙선
이별은 아픔을 동반한다. 때로는 그 아픔이 지나쳐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피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 하지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절대 피할 수 없는 게 이별이다. 회자정리라고 했다. 누군가와 만남을 가진 뒤에는 반드시 이별이 따른다.
그 숱한 이별들 중에, 간혹 불에 덴 것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별이 있다. 그같은 이별이 우리에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을 안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별이 아픈 기억으로 굳어지기 전에 머릿속에서 지워내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그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국가 애도 기간 끝났지만, 추모 발걸음 이어지는 이태원역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조성된 이태원 압사 참사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 지난 2022년 11월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조성된 이태원 압사 참사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 유성호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이별의 고통. 그 고통이 우리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이별이 떨쳐내기 힘든 고통으로 남을 때, 우리가 그와 같은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오로지 하루빨리 잊고 사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까?
서울 종로구 돈의문박물관마을에 가면, '이별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박물관이 있다. 그곳에 오랜 시간 이별의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에서 진솔하고 참된 마음으로 이별을 대하는 사람들을 본다. 이별을 대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마주한다.
▲ 시민갤러리, 이별박물관 입구. ⓒ 성낙선
아픈 기억 대신, 세월을 잊은 그리움
아버지는 아들에게 30년 동안, 답장이 오지 않는 편지를 쓰고 있다. 매달 두 통씩 쓴 편지가 무려 1천여 통에 달한다. 아들은 군에 입대한 지 6개월여 되던 날, 사고로 순직했다. 그 후로 아버지는 아들이 살아 있을 때 하지 못했던 말들을 편지로 써서 전한다.
아들과 함께 한 시간은 22년. 아들에게 편지를 쓰며 보낸 시간이 아들과 함께 보낸 시간보다도 더 길다. 아버지는 어떻게 그 무거운 마음을 안고 사는 걸까? 일흔이 훌쩍 넘은 아버지는 이제 아들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인생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 군 복무 중에 순직한 아들에게 아버지가 쓴 편지. ⓒ 성낙선
남자는 여자를 만난 지 일 년 만에 헤어졌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여자를 잊지 못한다. 다른 일에 몰두하려고 하지만, 그게 잘되지 않는다. 눈만 감으면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남자는 회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사랑이 떠나간 자리에 향수, 초콜릿, 반지, 재킷 등이 남았다. 남자는 여자한테서 받은 그 선물들을 볼 때마다 자신이 잘못했던 일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미 사랑을 되찾을 방법은 없다. 그래도 남자는 마지막으로 여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긴다.
▲ 사랑의 정표였다가 이제는 이별의 증표로 남은 반지. ⓒ 성낙선
여자는 남자에게서 받은 커플 반지를 끝내 없애지 못한다. 남자가 여자와 만난 지 일 년을 기념해 선물한 반지다. 여자는 반지를 나눠 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와 헤어졌다. 여자는 그 후에 반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여자는 고민 끝에 반지를 버리거나 돌려주는 게 최선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다. 여자는 남자가 그 반지를 마련하기 위해 어떤 고생을 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반지를 예쁜 추억과 함께 오래 간직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 아내를 앞서 보내고 혼자 식사를 하는 남편. ⓒ 성낙선
남편은 앞서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면서 살고 있다. 아내와 함께 산 세월이 무려 72년.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든 긴 세월이다. 남편은 이제 혼자 밥을 먹는다. 그 시간이 얼마나 낯설지,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
남편은 여전히 아내와 함께 산다. 현관에는 아내의 신발이, 옷장에는 아내가 입던 옷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남편은 간밤에 아내가 순두부찌개를 끓여주는 꿈을 꾼다. 그런데 그 찌개를 한 술도 뜨지 못하고 꿈에서 깨어난 걸 못내 아쉬워한다.
▲ 이별박물관,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 동물들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 ⓒ 성낙선
우리 주변의 또 다른 이별박물관들
그들의 담담한 말투, 낮은 음성에 일종의 달관이 엿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면에 숨겨진 고통을 모두 다 감출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같은 말투와 음성에서 오랫동안 고통을 끌어안고 산 사람들이 갖게 되는 단단하게 응결된 감정이 느껴진다.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이별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큰 상처로 자란다. 그 고통을 혼자서 짊어지고 사는 건 정말 가혹한 일이다. 그 고통이 사회적인 사건에서 비롯됐을 때는 더욱 더 그렇다.
▲ 돈의문박물관마을, 이별박물관. 전시물 일부. ⓒ 성낙선
이별박물관을 이색적인 박물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이별박물관은 절대 이색적인 박물관이 아니다. 결코 평소 보기 드문 전시물로 가득한 곳이 아니다. 그에 반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평이한 물건들로 채워진 박물관 중에 하나다.
어떤 측면에서는 너무 흔해서 탈이다. 돈의문 같이 특정한 장소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별박물관은 '서울 이태원', '진도 팽목항'에도 있다. 그 이전에 생겨난 이별박물관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당신은 또 당신만의 특별한 이별박물관을 가지고 있다.
▲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월 28일, 참사 장소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골목을 찾은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를 읽거나 적고 있다. ⓒ 김성욱
누군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간이 망각에 의존해 살아왔다면, 인간은 그저 '동물'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망각이 아니라, 기억에 의존해 살아간다. 다만 아픈 기억을 간직하는 데는 지혜가 필요하다.
혼자가 감당하기 힘든 아픔은 여럿이 같이 나눠서 짊어져야 한다. 그게 '인간'이다. 이별박물관에서 접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누군가의 아픈 기억을 들여다보는 이런 행위들이 우리 모두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 이별박물관에서 아픔과 슬픔을 나누는 법을 배운다.
▲ 돈의문박물관마을, 학교앞분식.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곳. ⓒ 성낙선
돈의문박물관마을에는 오래전 서울의 좁은 골목길에서 볼 수 있었던 40여 채의 건물들이 남아 있다. 그 건물들이 모두 삼대가옥, 서대문여관, 새문안극장 등으로 불리며, 작은 박물관 구실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다.
이별박물관도 그런 박물관들 중에 하나다. 박물관 규모가 매우 작다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별박물관은 '시민갤러리' 건물 안에 있다. 월요일에는 문을 닫는다. 개관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고, 입장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
▲ 삼대가옥, 돈의문박물관마을 ⓒ 성낙선
오마이뉴스
성낙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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